부족한 영화 리뷰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리뷰: 아시아 전통과 신데렐라의 절묘한 퓨전

깡통로봇 2022. 8. 12. 19:00

감독: 존 추

출연: 콘스탄스 우, 헨리 골딩, 양자경, 젬마 찬, 아콰피나, 피에르 팡, 레미 히, 로니 쳉, 켄 정 외

장르: 코미디, 드라마, 로맨스

볼 수 있는 곳: 넷플릭스

 

안녕하세요.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 평가가 좋았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알고는 있었는데 극장에서 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정확히는 당시의 글쓴이의 취향에 의해 선택하지 않아 보지 않았다는 게 더 정확한 설명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근래에 넷플릭스에 업로드가 되어 관람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네요. 이것이 OTT의 장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할리우드에서 ‘블랙 팬서’와 같이 흑인 분들이 주요 역할을 대부분 맡은 영화가 나왔듯이, 비록 슈퍼 히어로 같은 장르가 아니라 많은 대중분들의 눈길을 끌지 않는 영화임에도 좋은 평가를 받은 아시아인들이 주요 역할을 맡은 영화가 나왔지요. 이제와 아시아 문화를 배경으로 한 영상물들이 등장한 것을 보면 확실히 시대가 조금씩 변하고 있기는 한가 봅니다.

평범하게 살아왔던 내 남자친구가 알고보니 싱가포르 최고 재력가의 후계자?

아시아판 신데렐라 스토리?

이야기는 단순합니다. 주인공 ‘레이첼 추(콘스탄스 우 분)’가 남자 친구인 ‘닉 영(헨리 골딩 분)’의 가족 행사와 관련해서 함께 싱가포르로 여행을 가게 되면서 일어나는 일을 그려냈습니다. 글쓴이가 싱가포르에 대해서 여행을 가본 적도 없고 자세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정확히 꼬집어 말씀드릴 수는 없겠습니다만 나름대로 싱가포르도 아시아는 아시아구나라는 인상을 많이 받았습니다. 싱가포르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관광도시, 많은 국가들이 무역을 하는 곳, 그리고 돈이 많은 나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아시아라는 이미지보다 다국적 이미지가 글쓴이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죠. 싱가포르를 보니까 한국이나 중국, 그리고 일본의 문화와 얼추 비슷한 궤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익숙한 아시안들의 문화가 등장합니다. 야시장의 모습을 잠깐 보여주며 조금 리얼한 느낌의 싱가포르를 연출합니다만 주로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엄청난 재력가의 겉모습을 묘사하여 화려함을 자아내고 있어요.

영화 설정이 성정인만큼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조금은 걱정했습니다. 한국의 공영파 드라마들처럼 비싼 집에 살고 있고 비싼 음식을 먹으며 엄청난 재력가 후계자의 부인이 될 레이첼을 괴롭히는 단순한 이야기가 될까 싶어서요. 하지만 제법 영화가 단순한 신데렐라 이야기에서 조금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전체적인 이야기 구조는 신데렐라 느낌의 다소 고전적인 방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싱가포르의 재력가 후계자 닉은 아시안들의, 특히 여성들 사이에서, 가장 큰 관심거리 중 하나로 레이첼은 당연히 질투와 시기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그로 인해서 레이첼이 싱가포르에서 예기치 못한 시련을 겪는 모습도 나오기도 하고요. 하지만 영화는 그런 싱가포르의 이미지를 매우 풍자적으로 묘사합니다. 엄청난 비주얼이 난무하는 가운데 글쓴이가 화면을 통해서 떠오르는 단어는 단 하나, 천민자본주의였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니 이 영화가 어딘가 아시안들을 비꼬기 위해서 만들어진 게 아닌가 싶네요.

멋진 아우라가 흘러넘치는 배우 헨리 골딩의 매력이 남자자 봐도 대단한 수준

조상들의 힘으로 거대한 부를 취하여 자라난 세대들의 허영에 쩔은 모습들이 재미있게 그려지긴 합니다. 거기다가 아시아 특유의 가문을 따지는 모습까지 엮여서 만들어진 순간순간이 부자 아시아인 풍자 종합세트를 보는 듯하기까지 하고요. 그래도 싱가포르 사람들이 전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스꽝스럽게 묘사되어 재미있게 그려진 부분이 존재합니다만 그래도 돈이 있는 사람들 중에 신의를 지키는 인물들도 다수 등장해서 레이첼이 의지할 수 있는 인물이 닉만이 아니며 모든 동양인 부자들이 나사가 빠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레이첼이라는 인물 자체도 다른 인물에게 기대어 의지하는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꽤나 어필을 합니다. 뉴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타이틀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 인물이 시련을 겪는 것은 그녀가 맞서 싸워야 하는 상대가 너무나도 거대한, 영화 제목 그대로 미칠 듯이 부자인 가문과 그 일당들이기 때문입니다.

배우 양자경의 연기는 현재 여배우 탑에 올려놔도 손색이 없을 정도

그럼에도 이 영화를 이야기하면 신데렐라가 많이 언급될 것 같긴 합니다. 그녀의 고민을 들어주며 용기를 북돋아주고 부족한 화려함을 자신의 옷으로 도와주는 친구 ‘펙린 고(아콰피나 분)’와 사실 상 싱가포르의 왕자와 다름없는 남자 친구 닉의 존재는 분명 신데렐라의 그것들입니다. 그러나 아시아의 문화가 중시되는 싱가포르에서 미국 국적에 광둥어를 모르는 레이첼이 자신이 미움을 받는 이유를 알아가며 그것을 마지막에 뒤집어 놓는 장면은 신데렐라와는 많이 다릅니다. 어머니 ‘엘레노아 영(양자경 분)’의 영향력 아래에 강력히 반항을 하지만 완전하게 벗어나지 못하는 닉 덕분에 레이첼은 엘레노아와의 거대한 기싸움을 하게 되는데, 이 과정을 통해서 아시아 대부분의 문화에 뿌리 잡혀 있는 부모와 자식 간의 끈끈한 특유의 관계를 깊이 있게 다루게 되며, 그것을 논리적으로 그리고 감동적으로 뒤집어내 누구나 충분히 납득할 만한 엔딩을 만들어 신데렐라와의 차별점을 보여줍니다.

이런 물은 절대 마시는 게 아니고 손 씻는데 사용하는 것이다...메모메모

좋은 영화지만 아시아인들에게는

영화가 제법 잘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시아 특유의 가족 문화를 그려낸 영상물들 중에서 최근에 나온 것들 중에서는 이것이 최고가 아닐까 싶네요.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에 이어지는 것들을 지키려고 하다가 너무 몰입한 나머지 중요한 것을 간과해버리는 우를 범하고 그것을 바로 잡는 이야기를 잘 그렸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아시아인들에게 호기심을 유발할만한 소재거리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서양인들의 시각에서는 특이하게 볼만한 것들이 많습니다. 미국에서는 슈퍼마켓이나 식당, 세탁소나 돌리는 아시아인들이 싱가포르에서는 자신들을 가벼이 뛰어넘는 부자라는 설정에 부자 가문인데도 어머니의 영향력에 구속되어 있는 성인인 남자 주인공의 모습은 좀 충격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동양인들에게는 부자라는 설정을 제외하고는 커다란 흥밋거리가 아니라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동양인들에게는 이 이야기가 생활 그 자체이거든요. 새로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개그를 담당하는 분으로 훈훈한 우정까지 겸비했다

레이첼이 마지막 엘레노아와의 마작에서 대화를 하는 장면이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만 대화를 통해 드러나는 결론도 사실 많이 식상하다면 식상한 편입니다. 고전 클래식으로 재미를 많이 본 디즈니도 이제는 고전에 탈피해서 작품을 만드는 세상인데 오히려 신데렐라의 구조를 따르는 영화를 보면 세계의 흐름에 따르는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디테일한 부분에서 고전의 프레임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그것들은 그냥 몸부림에 지나지 않습니다. 부자 남자 친구와 가난한 여자 친구에 대한 소재가 유독 한국에서는 더 안 통할 거라고 생각되기도 하고요. 이런 소재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공영 채널 드라마가 더 깊은 내공을 지니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도 이 영화의 만듦새 자체는 일정 수위의 품위를 지니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보면 이쪽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만.

마작을 통해서 엘레노아와의 대화가 이뤄지는 시퀀스는 절로 엄치가 올라간다

그 외에

극 중 ‘아스트리드 테오(젬마 찬 분)’의 이야기로 단조로움을 피해 이야기를 더 풍부하게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사실 상 아스트리드의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빠져도 상관없다고 생각되지만 오히려 그녀의 이야기 덕분에 재력가의, 제대로 된, 자식들의 속앓이를 보여줘서 이들의 삶이 돈이 많다고 마냥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레이첼과 같이 왜곡된 전통을 깨부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측면에서 큰 시너지를 불러일으키는 인물이기도 하고요. ‘이터널스’의 주인공을 등장했던 배우 젬마 찬분의 우아한 매력을 끊임없이 즐길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오히려 이터널스에서의 젬마 찬이 매력이 덜 발산된 것 같다는 것을 이 영화를 감상하고 나서 분명히 알겠더군요.

어머님도 저와 같았으면서 왜 저를 거부하시나요

배우분들의 연기가 일품입니다. 콘스탄스 우, 헨리 골딩이 멋진 연기를 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연기를 하는 배우는 바로 양자경이 아닐까 싶네요. 2010년도 후반에 들어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고 글쓴이 개인적으로 평가하는 분인데, 그 전성기에는 이유가 반드시 있다는 것을 몸소 증명하고 있는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연기의 디테일이 매우 뛰어나며 근래에 보여주는 악역 연기는 ‘스타트렉: 디스커버리’의 ‘필리파’와 함께 최고가 아닐까 싶네요. 거기다가 자신의 문제를 쿨하게 인정하는 모습까지 보여줘 많은 분들에게 큰 인상을 심어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돈 많은 집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우리...

이미지 출처: 공식 예고편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