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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영화 리뷰

<오마주> 리뷰: 현재에게 과거가 보내는 짧고 굵직한 응원

by 깡통로봇 2022. 8. 4.

감독: 신수원

출연: 이정은, 권해효, 탕준상, 이주실, 김호정 외

장르: 드라마

볼 수 있는 곳: 넷플릭스

 

안녕하세요.

삶이라는 건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는 법입니다. 우리들 각자 머릿속으로 자신이 꿈꿔왔던 것들을 펼쳐내고 그것을 그대로 현실에 옮기면 모든 게 만사형통이라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지요. 꿈과 현실의 괴리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부분에서 꿈을 먹고 하루를 살아가는 분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주류가 아닌 비주류로서의 도전을 하게 되면 그 자체로 악재가 되어버립니다. 정정당당히 싸우는 것도 힘든데 편견에까지 맞서 싸운다는 건 너무 힘에 부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설령 당장은 편견까지 맞서 버틸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결국 언젠가는 무너지게 되기도 하고요. 

영화사업이 좀 어려운 일이라는 건 알겠지만 영화 상영에 단 둘의 관객은 좀...

잔잔하지만 흡입력 있는 이야기

주인공 ‘지완(이정은 분)’은 여자 영화감독입니다. 세 번째 작품을 스크린에 걸었지만 보는 사람은 없어 흥행에 빨간불이 들어온 상태지요. 앞으로의 계획에도 많은 차질이 빚어질 것 같은데 굳이 미래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당장 무너질 것 같은 모양새입니다. 그럼에도 시나리오를 써 내려가지만 자신감이 없어진 탓인지 간단한 문법에도 긴가민가하는 지완의 모습은 바람 앞의 촛불과도 같아 보입니다. 그런 그녀에게 새로운 작업 제의가 들어옵니다. 60년대 영화 사운드 복원이 그것으로 제목이 ‘여판사’라는데 어랍쇼? 이 영화의 감독이 무려 최초의 여자 감독이라고 합니다. 무려 연출작업을 할 때 아이를 업기까지 했다는 감독. 지완은 빡빡한 제작비를 가지고 영화 여판사의 소실된 부분을 찾기 위해 여정을 떠나게 되는 것이 이 영화의 핵심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힘든 와중에 지완에게 운명같은 일이 다가오게 된다

하지만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지완과 여판사 감독인 ‘홍재원(김호정 분)’의 삶이 꽤 닮아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같은 여성 감독이라는 것은 물론 그녀가 만들었던 작품이 세 번째 이후로 없었다는 것까지 마치 과거에 있었던 일이 예언서인 것처럼 지완을 옭아메는 이야기 전개가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홍재원의 이야기가 비극적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비록 세 번째 작품까지밖에 찍지를 못해 자신의 꿈을 활짝 펼치지는 못했지만 그녀가 처했던 상황들에 비해 홍재원이 가지고 있는 태도와 자세는 낭만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지완이 그녀의 삶에 매력을 느끼고 거기서 자신이 원하는 답을 원하는 듯이 영화를 보는 관객도 홍재원이라는 인물의 삶에 호기심과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영화가 연출이 잘 되어 있습니다.

비록 과거에 머물러 사라진 사람이라도 스스로를 절대 나추지 않음에 매력이 느껴지며 응원하고 싶어진다

지완이 현실에 맞대는 장면들은 우울한 느낌이 이야기를 지배하고 있습니다만 홍재원의 이야기는 이미 일어났던 과거의 일임에도 매우 몽환적으로 그려졌습니다. 홍재원의 나이 든 옛 지인들로부터 그녀의 삶이 쉽지 않았음을 전해 들을 수 있습니다. 마치 현실의 지완이 처해있는 상황처럼 말이죠. 하지만 그녀들이 보여주는 분위기는 사회 속 그들이 받아야 했던 부당함에 대한 울분이나 세상 타령이 아닌 과거에 힘들었어도 그렇게 했음에 가치가 있었다는 것과 시간이 지난 지금 과거보다 나은 현재가 있다는 점에 대한 즐거움과 다행이라는 점이 참 좋았습니다. 그런 부분에서 이 영화가 바라보고 있는 세상의 시선이 얼마나 너그럽고, 그것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돈이 없어서 일단 하지만 고작 더빙작업을 저예산으로 그것도 일부가 소실된 걸 복원하는 고난이도 작업인데 나보고 하라고..!?

지나간 것들 지나가려는 것들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는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이야기의 정체성은 매우 뚜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여성 감독이 연출했던 작품을 복원시키는 것도 그러한 부분에서 같은 결을 가지고 있지요. 거기다가 지완의 존재가 단순히 하나의 작품을 복원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홍재원이 그토록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꿈을 이어받는다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영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비록 여판사 복원작업이 지완의 네 번째 작품은 아니지만 쓰러져가고 있는 그녀를 충분히 재충전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해 아직은 막연하지만 앞으로 희망이 계속될 것이라는 따뜻함을 전달합니다. 끝이 다가오고 있어 마감을 준비하는 지완이 끝이 나버린 것들을 이어가면서 다시 누군가에게 자신을 이어주는 것 자체로 충분하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하고요.

아니 그런데 복원작업을 해야하는 작품에서 비범함이 느껴진다!

그만큼 지완의 삶이 힘들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비록 과거 홍재원이 활동했던 때보다 편해지긴 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영화가 제법 현실의 배고픈 예술가들의 삶을 잘 묘사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제작하신 분들의 삶에서 우러나오는 내공 같은 것이라고 생각됩니다만 꽤 설득력 있고 공감가게 그려졌습니다. 지완의 상황뿐만 아니라 지완의 가족의 상황까지도 말이죠. 놀랍게도 영화는 누구를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영화가 아닙니다. 그런 부분에서 매우 포용력이 강한 영화라고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특별한 이야기를 다루지 않고 있음에도 영화가 가지고 있는 자세 자체가 특별하기 때문에 아름답기도 하고요. 뻔하게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불특정 누군가의 잘못으로 분노를 표출을 할 법 하지만 그런 부정적인 에너지는 이 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단지 해결책인 살아남아 이어가는 것을 제시할 뿐이죠.

단순히 작업을 위해 과거의 흔적을 찾아 고생을 하지만 그것이 현재의 자신에게 큰 위로와 감동을 주게 된다

그 외에

어쩌면 단순히 버티라는 점에서 어떤 관객분들은 구체적인 해결책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고 있다며 비판을 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충분히 그런 말이 나올 만 하지만 홍재원의 삶과 홍재원이 남긴 작품이 완전히 유실될뻔해서 명맥이 끊어질 뻔한 것을 보면 지완이 해야 하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임무가 가벼이 다뤄질 것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하다고 보입니다. 살아남는 것마저 어려운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은 그녀가 미처 가지지 못한 여성 감독으로서의 사명감을 부여한 것 같기도 하고요. 그것만으로도 일단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라져가는 과거의 것들에 의해 쓸쓸함이 묻어나지만 그것을 상회하는 희망을 전달한다

배우 이정은의 매력이 다시 한번 터지는 영화입니다. 2019년작 ‘기생충’으로 임팩트 있는 역할을 맡아 많은 관객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는데 이 작품으로 배우 이정은 잔잔한 연기를 통해 단독 장편 영화 주인공으로서 이야기를 끌고 나갈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음을 입증합니다. 상업영화가 아닌 독립예술영화에 출연하여 큰 파도 없는 연기를 하심에도 영화의 중심을 밸런스 있게 잡아내어 관객이 영화를 감상하기에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자체도 이야기가 짜임새가 잘 되어 있어서 담백한 맛이 나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배우분들의 연기도 매우 준수한 수준이라서 몰입감도 상당했고요.

걱정말아요, 그대. 이제 제가 당신을 기억하고 또 살아남아 후대에 물려줄게요.

이미지 출처: 공식 예고편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