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독: 리 아이작 정
출연: 스티븐 연, 한예리, 윤여정, 앨런 S. 킴, 노엘 조, 윌 패튼, 스콧 헤이즈 외
장르: 드라마
볼 수 있는 곳: 왓챠, 넷플릭스, 티빙
안녕하세요.
배우 윤여정 씨께는 2020년과 2021년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날이 아닐까 싶네요. 배우로서 전 세계에 이름을 떨치신 시기로 우리나라 사람들도 윤여정 씨의 수상쩍은 수상 릴레이와 기어코 받아내신 오스카 수상으로 많이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미나리’라는 영화가 개봉된 지 지금은 시간이 조금 흘렀는데 글쓴이와는 연이 되지 못해서 영화를 관람을 지금까지 못했었습니다. 이미 TV에서도 공개가 됐던 이력이 있었기 때문에 핑계로 들릴 수 있겠지만 어찌 됐든 이제야 미나리를 편하게 글쓴이가 원하는 시간대에 감상할 수 있었다는 것이죠. 넷플릭스에 미나리가 업로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말초적인 자극을 불어넣는 영화가 인기인 요즘이라지만 조금은 심심하더라도 깊이 있고 굳건한 이 영화를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다소 리얼한 미국 거주 한인 가족 이야기
영화를 감상하면서 글쓴이 개인적으로 놀랐던 점은 이 영화가 정말로 한국적인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대사 중간중간에 미국의 문법이 느껴지는 한국어의 흔적이 심심찮게 느껴집니다만 그럼에도 글쓴이가 느꼈던 것은 한국의 정서가 한가득 담겨있어 정말 익숙한 느낌이 들었어요. 수많은 동양인을 주인공으로 둔 영화들, 심지어 한국인들이 만든 영화에서조차도 전통적인 한국 냄새가 나는 영상물을 요 근래에서는 보기 매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만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에서 이런 영화가 나왔다는 점은 놀라운 일입니다. 감독이 아무리 한국계 미국인이었다고 해도 이 영화가 제작 자체가 이뤄졌다는 것만 해도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까 싶어요. 한국의 문화적 위상이 그만큼 달라져서 그런 것인가 하는데 이 영화는 근래의 한국적 밈에 의존하지도 않습니다. 한국 고유의 무언가를 담고 있어서 보는 내내 한국의 옛날 감성이 느껴졌거든요.

시간적 배경이 현대가 아니라 1980년대 정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과거의 향수를 글쓴이가 맡았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분위기와 배경만으로 한국스러운 진한 맛을 내기에는 무리가 있죠. 한국계 미국인 배우와 감독들이 다수 출연한 이 영화에서 이야기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삶의 방식이 분명한 그때 그 시절의 한국인의 것이라는 것을 신기하게 감상했습니다. 우리에겐 익숙하지만 미국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들이 잘 연출되어 드러나는데 영화를 만든 분들이 얼마나 자신의 뿌리에 대해서 잘 인지하고 계시는지에 대해서도 강하게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했고요. 작중 내내 갈등으로 말싸움을 하는 ‘제이콥(스티븐 연 분)’과 ‘모니카(한예리 분)’의 모습부터가 우리나라 특유의 말싸움을 그대로 옮겨오지 않았습니까. 이야기 속 인물들의 가족 구성도 할머니가 끼어있는 핵가족이기도 하고요.

미국에서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는 한인 가족
한국인에게 익숙한 것을 그렸다고 전부가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것들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에 정착해서 살아가는 한인 1세대들의 비애를 잘 그렸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하게도 미국에 이민을 가본 적이 없는 글쓴이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부분이라 감정적으로 이입이 약간 힘들지 않을까 하는 부분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희망에 찬 얼굴을 가득하고 미국 아칸소 땅에 정착한 제이콥과 새로운 정착지에 적응이 쉽지 않아 시종일관 짜증을 내는 모니카의 모습이 우리나라 분들이 영화를 즐길 때 가장 먼저 느끼는 첫 번째 장애물일 겁니다. 그래도 흥미롭게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병아리 감별사라는 정말 영화 인물이 가지기 어려운 직업으로 살아갔던 제이콥이 이제는 농장을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을 보면 터에 뿌리를 제대로 잡아 살아가고 싶은 한인들의 마음을 제대로 대변합니다. 한국인들이라면 가지고 있는 각자의 한을 제이콥이 가지고 있는 모양새인데 한국계 미국인 분들은 아마 제이콥을 통해서 울컥한 무언가를 느끼시지 않을까 싶네요.

캘리포니아에서 병아리 감별사로 열심히 일해 밑천을 만들어 왔다고 해도 결국은 새로운 땅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인 만큼 제이콥 가족의 이야기는 순탄치 않게 흘러갑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제이콥이 농장을 경영하는 것을 중점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닙니다. 제이콥의 농장은 이야기 전개에 필요한 부분적인 요소일 뿐, 진짜는 제이콥 가족이 미국 땅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면서 생기는 갈등과 불화,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봉합해 나가느냐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일할 수 있는 인력이 한정된 만큼 아이들을 돌봐줘야 할 외할머니 ‘순자(윤여정 분)’의 등장으로 순자와 ‘데이빗(앨런 S. 킴)’과의 익숙하면서 기묘한 갈등이 이 영화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기도 하지요. 처음 보는 한국 토종 할머니를 굉장히 낯설어하는 데이빗과 자신에게 몹쓸 장난을 저질렀음에도 그런 데이빗을 굉장히 사랑하는 모습이 훈훈하면서도 재미있는 장면을 연출해 극의 긴장감을 절묘하게 조절하기도 합니다.

재미있는 부분은 제이콥이 기르는 농작물과 미나리의 속성이 굉장히 상반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제이콥이 기르는 농작물은 미국식이 아니라 한국식으로 키우고 있는데 돈이 많이 들고 손도 많이 가서 작중 제이콥이 적지 않은 힘을 쏟아내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만 미나리는 그것과는 완전 정반대입니다. 단지 터만 괜찮은 곳을 제공한다면 굳이 물을 대지 않아도 성장에 보탬을 해주지 않아도 스스로 잘 자라는 것을 볼 수 있어요. 그 모습이 한인들이 척박하고 맞지 않는 미국 땅에 살아가는 올바른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고 봅니다. 미나리와 제이콥의 농작물 전부 한국의 것이지만 미국의 땅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조건적인 고집과 막무가내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고, 애초에 터만 잘 잡기만 하면 알아서 정착해 나가는 한국인을 뜻하는 만큼 영화에서 보여주는 가족 간의 갈등도 언젠간 가볍게 지나갈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아주 좋은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그 외에
한국계 미국인 배우분들의 억양이 조금 어색한 부분이 간혹 들려오긴 합니다만 그리 크게 문제 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미국에 10년 정도를 살아왔다는 설정을 보면 그리 될 수도 있다고 생각되니까요. 한국말과 미국 말을 섞어서 쓰는 것이 한국계 미국인의 특징 중 하나라는 것을 글쓴이가 뚜렷하게 인지하게 되는 영화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마지막에 갑작스럽게 끝맺음을 하는 듯한 장면으로 끝나는데 조사를 해서 보니까 예산 부족으로 인해서 본래 기획했던 엔딩을 빼버렸다고 하더라고요. 그럼에도 엔딩에서부터 전해오는 여운이 굉장히 강렬하고 희망차서 만족스러운 영화라고 봅니다.

배우 분들의 연기가 뛰어난 영화입니다. 배우 윤여정 씨야 지금까지 수많은 분들이 언급하고 칭찬하시기도 해서 더 보탤말이 없습니다만, 배우 스티븐 연와 배우 한예리는 정말 화면이 나올 때마다 막막하고 답답한 장면을 놀랍게 잘 잡아내어 그 감정을 그대로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힘을 보여줍니다. 두 사람이 말다툼을 하지 않는 장면에서도 딱 이 인물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대사가 없어도 쉽게 쉽게 알아챌 수 있도록 디테일한 연기를 해냅니다. 배우 스티븐 연은 자신의 필모를 잘 쌓아가고 있어서 다음에는 어떤 영화에 출연하게 될지 궁금하네요. 배우 한예리는 점점 농익는 연기를 해나가는 것 같아 정말 보기 좋았습니다. 역시 앞으로의 행보가 정말 기대됩니다.

이미지 출처: 공식 예고편 스틸컷
'부족한 영화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리뷰: 정해져 있는 운명 속에서 스스로 불타올라 승화하는 것처럼 (0) | 2022.09.07 |
---|---|
HBOmax<피스메이커> 리뷰: X라이들이지만 지구 평화에 만큼은 진심인 이들의 이야기 (0) | 2022.09.06 |
<터지기 전에> 리뷰: 성인을 앞둔, 미래에 대한 불안 속 청소년들의 이야기 (0) | 2022.09.02 |
넷플릭스 <아이 케임 바이> 리뷰: 살을 주고 뼈를 취한...아니, 살을 주고 뼈도 바친다 (0) | 2022.09.01 |
디즈니플러스 <발렛> 리뷰: 치유란 진정한 이해를 통해서 진솔함을 나누었을 때 이뤄지는 것 (0) | 2022.08.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