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셀린 시아마
출연: 노에미 메랑, 아델 아에넬, 루아나 바야미, 벨레리아 골리노, 크리스텔 바라, 아르망 불랑제 외
장르: 로맨스, 멜로, 드라마
볼 수 있는 곳: 왓챠, 넷플릭스, 웨이브
안녕하세요.
사랑이라는 것이 반드시 남자와 여자의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개념이 강조되는 요즘에는 안타깝게도 사랑에 대한 시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조금씩 삐뚤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냥 사람과 사람과의 뜨거운 관계가 아니라 반드시 인정받아야 한다는, 정말로 정치적인 색에 물들어버린 것이 오히려 악영향으로 변하는 것 같습니다. 너무 급진적으로 밀어붙인 탓일까요. 남자와 여자의 관계가 사랑이라는 개념이 더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현재 사회에서 사랑이라는 개념이 더 포괄적으로 바뀌어야 하기에는 안타깝지만 미래를 향한 무언가를 위한 상상을 뛰어넘는 인내심을 더 발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관찰, 이해, 사랑
주인공 ‘마리안느(노에미 메랑 분)’은 화가로 ‘엘로이즈(아델 아에넬 분)’의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바다를 건너온 인물입니다. 재미있게도 일종의 결혼을 위한, 현대식으로 이야기하자면 프로필 사진을 찍어서 다른 배우자감들에게 어필을 하기 위한 작업을 하기 위해서 엘로이즈를 만나러 온 것입니다. 초상화를 그리는 마리안느의 입장에서 엘로이즈의 초상화를 그리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관찰입니다. 영화의 연출 방법이 흥미롭게 펼쳐집니다. 마리안느가 엘로이즈를 관찰하듯이 카메라 워크의 방식이 엘로이즈를 관찰자 시점으로 이뤄지기 때문이죠. 마치 카메라 프레임 자체가 사각형 캔버스인 것처럼 엘로이즈를 담아내어 차갑고 무뚝뚝한 분위기를 연출하게 됩니다. 마리안느와 엘로이즈의 관계도 이때만큼은 철저한 비즈니스의 관계로 형성되기도 하지요. 그럼에도 엘로이즈와 마리안느는 적지만 대화를 통해서 서로에 대한 이해의 창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마치 관객들이 왜 엘로이즈가 초상화를 그토록 그리기 싫어했는지를 이해하기 시작하는 것처럼요.
그렇게 몰래몰래 그린 마리안느의 초상화 그리기 작업이 숨 막히지는 않지만 재미있게 과정이 묘사되고, 다 그리고 난 뒤에는 새로운 국면에 직면하게 됩니다. 제삼자들이 봤을 때의 완성된 초상화가 제법 잘 그려졌지만 엘로이즈가 묘한 말을 꺼내며 초상화에 대한 엄청난 혹평을 내린 것이죠. 그런데 마리안느의 반응도 흥미롭습니다. 엘로이즈의 말에 공감을 하면서 울먹이며 애써 그린 초상화를 지우게 됩니다. 관찰자로서 그린 엘로이즈의 초상화가 생동감이 없어 보인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대목입니다. 엘로이즈가 마리안느와 산책을 하면서 내뱉은 자신에 대한 짤막한 정보들이 마리안느에 대한 마음을 열었다는 증표이지만 마리안느는 엘로이즈의 마음에 화답을 제대로 하지 않고 오직 비즈니스의 관계로서만 대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처지 때문에 다소 퉁명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는 엘로이즈이지만 관찰자의 입장으로 시작된 그녀에 대한 관찰이 단지 건조한 관계로만 작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연하게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이미 자신의 운명이 결정된 엘로이즈에게는 진정한 사랑을 더 늦기 전에 해보고 싶은 것이기에 눈앞에 있는 마리안느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사랑의 몸부림을 먼저 보여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18세기의 여성들의 삶으로 살아간다는 건 그런 것이죠. 타인에 의해서 정해진 프레임에 갇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 순응해야 합니다. 엘로이즈의 결혼도, 마리안느의 여성 화가로서 그릴 수 있는 그림의 종류가 한정되어 있는 것도 결국은 크게 보면 같은 처지에 있는 그들은 금세 이해를 통한 사랑으로 불같이 빠져들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다시 한번 초상화를 그릴 수 있는 기회를 얻은 마리안느와 엘로이즈는 꿈결 같은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이 시점부터 관찰자로서 작용하는 요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영화가 이야기를 매우 따뜻하게 관객들에게 전달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도 그들을 감싸고 있는 상황들은 여전히 차갑고 냉혹하게 묘사되어 이 둘의 관계가 쉽사리 풀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암시하기도 합니다.
오르페우스 신화, 그리고 이별
‘백작 부인(벨레리아 골리노 분)’이 집을 비우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마리안느와 엘로이즈 그리고 시녀 ‘소피(루아나 바야미 분)’는 오르페우스 이야기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합니다. 바로 죽은 에우리디케를 살려내기 위해 명계로 넘어간 오르페우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인데, 오르페우스가 명계에서 벗어날 때쯤 뒤를 돌아봐 결국엔 에우리디케를 잃게 된다는 대목에 대해서 서로가 나누는 대화가 흥미롭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오르페우스는 명계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여 성급하게 뒤를 돌아본 것으로 되어 있지만 인물들이 나누는 그가 뒤를 돌아본 이유에 대해서 사랑이라는 요소가 튀어나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는 세명의 반응이 전혀 다릅니다. 정열적인 영혼의 소유자 엘로이즈는 에우리디케가 오르페우스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돌아봐달라고 이야기했기 때문에 오르페우스도 돌아봤다는 새롭고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해석을 내놓습니다. 진정한 사랑을 하지 못하고 예기치 못한 임신으로 고생을 하는 시녀 소피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이는 결국 커다란 복선이 되어 마리안느와 엘로이즈의 관계가 그와 같은 이별을 맞이하게 됨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결국은 그들이 맞이해야 했던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순응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이들이 받아들이는 이별의 자세는 슬프지만 이별 전과 같이 대담하고 뜨겁습니다. 마리안느가 떠날 때 엘로이즈의 뒤돌아봐달라는 말에 과감히 뒤를 돌아보는 것과 같이 서로가 서로에 대한 감정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소중히 하고 있기 때문이죠. 이별하기 전, 그들이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며칠 동안 있었던 일들이 그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쳐 직접 만나지는 못해도 간접적으로나마 만나게 되어 서로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는 암시가 영화에 나타날 때의 감동과 여운은 그야말로 화룡점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리안느가 완벽하진 않지만 잠깐 연주한 사계의 여름처럼 짧지만 강렬했던 그들의 사랑을 완벽한 연주로 듣기 위해 공연장에 찾은 두 여인의 모습은 최고의 장면으로 관람했던 모든 분들이 생각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그 외에
예술에 관련된 소재, 특히 화가에 대한 것들이 등장하는 만큼 색채에 대한 느낌이 강렬한 영화입니다. 마리안느와 엘로이즈가 입은 옷의 색이 그들의 심리를 단번에 대변하기도 하여 영화가 미장센으로서도 크게 작용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의도적으로 차가운 느낌을 화면에 담았다고 생각합니다만 당시의 시대적인 아름다운 분위기를 풍기기도 해서 시각적으로 영화를 보는 맛이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퀴어 영화이긴 한데 이 영화를 보면 그런 느낌보다는 큰 틀에서 같은 처지에 놓여있는 사람들이 서로에 대해 공감하고 이해를 함으로써 사랑의 감정으로 이어져 나가는 당시 시대적 프레임에 대한 몸부림을 보는 것 같다고 봅니다. 예기치 못한 임신을 해서 낙태를 해야 하는 시녀 소피의 모습에서 참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데 낙태를 결심한 그녀를 마리안느와 엘로이즈가 흔쾌히 도와주는 것도 그런 결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네요.
배우분들의 연기가 아주 매력적인 영화입니다. 배우 노에미 에랑의 연기도 좋았지만 뒤로 갈수록 태풍같이 변하는 배우 아델 아에넬의 연기는 이 영화를 점점 몰입하게 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엘로이즈가 처음엔 뚱한 표정으로 토라진 얼굴을 시종일관하고 있고 정적인 느낌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이야기 내에서 가장 불타오르는 영혼을 지니고 있는 그녀이니만큼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여주며 관객들을 사랑의 소용돌이라는 감정에 몰아넣습니다. 특히나 마지막 공연장에 온 그녀의 표정은 그녀가 아직도 마리안느에 대한 사랑을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며, 그것에 대한 그녀의 감정에서 슬픔과 행복이 교차가 이뤄지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과 애틋함을 전달합니다. 마지막으로 여담이지만 15세 관람가이고 짧지만 강렬한 노출이 있어서 글쓴이 개인적으로 깜짝 놀라는 부분이 있어서 다른 분과 관람하실 때 약간 조심을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이만 마칩니다.
이미지 출처: 공식 예고편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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