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이창동
출연: 윤정희, 이다윗, 안내상, 김희라, 김용택, 박명신, 김종구, 김계선 외
장르: 드라마
볼 수 있는 곳: 왓챠, 넷플릭스, 티빙
안녕하세요.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가 넷플릭스에 업로드가 됐습니다. 이 영화가 개봉한지 10년이 넘었는데 넷플릭스에 업로드가 되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네요. 영화 개봉 당시에 나이가 적었던 글쓴이는 이 영화를 감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세월아 네월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이렇게 연이 이어지게 되다니 감회가 새롭네요. 이 영화를 이제와 직접 감상하게 됐지만 약간 어질어질한 글쓴이 개인의 과거와도 관련이 있기 때문에 기억에서 이 작품을 놓지 않고 있었거든요. 이번에 감상을 마침내 하게 됐는데 역시 많은 영화 팬분들이 호평한 대로 좋은 영화였습니다.
남의 일인 줄 알았던 것들이 자신의 일이 되는 순간
시라는 소재로 영화가 어떻게 이야기를 다루게 될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강렬한 느낌을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하루하루를 떠맡겨진 손자 ‘종욱(이다윗 분)’을 먹여 살리기 위해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미자(윤정희 분)’의 생활에 커다란 시련이 다가오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시련이란 다름 아닌 영화 시작의 충격적인 장면과 관계된 여중생 자살사건에 종욱이 가해자들 중 한 명이었던 것이 밝혀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야기적으로 이 영화는 조금 특이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보통의 영화라면 피해자의 입장에서 가해자와 싸우는 이야기를 다뤘을 테지만 이 영화는 가해자의 가족 입장에서 사건을 풀어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처음부터 자신의 손자가 그런 끔찍한 짓을 했는지도 모르고 있었던 상태였고요.
슈퍼마켓에서 주인아주머니랑 죽은 여학생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까지만 해도 남의 이야기였던 것이 자신의 손자 종욱이 가담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자신의 일이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뭐가 뭔지 모르겠는 상황에서 미자를 이끌어주는 것은 우락부락한 형사도, 정의감 넘치는 선생도, 정이 넘치는 이웃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미자가 그토록 쓰고 하고 싶은 시에 대한 열망이 그녀를 자신을 구원에 이끌게 했습니다. 시를 지으면서 마음의 치유를 한다 그런 건 아닙니다. 시와 집단 성폭행 사건, 그리고 여중생 자살사건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나열을 조화롭게 만드는 것은 바로 ‘시상을 찾는 것’이었던 것에서 정말 신선한 접근법이 아닐 수가 없네요. 그렇다고 시상을 찾는 것이 설득력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통해 사회의 이슈를 관통하는 통찰력을 보여주기도 하거든요.
나는 너에게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
미자가 이혼한 딸의 손자 종욱을 보살펴왔다고 하지만 종욱이 저지른 일을 보면 미자가 제대로 돌보지 못했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아이를 기르는 것이 마냥 먹고 자고 싸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측면에서 말이죠. 옳은 길로 가도록 인도하고 나쁜 짓을 하면 따끔하게 혼을 내서 다음부터는 그러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아이들을 어른으로 키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영화 속 미자는 종욱에게 큰 관심을 가지지 못했고 결국에는 자살사건이라는 끔찍한 결과물을 낳게 됐습니다. 미자는 이제라도 시상을 찾기 위해서 자신 주위의 것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얼핏 보면 잔혹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탈출구로 보일 수도 있지만, ‘김용탁 시인(김용택 분)’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시상은 자신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다가가는 것이라고요.
시 강좌의 시작이 과거의 향수에 젖어 시를 시작하면서 가혹한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히려 시 강좌를 통해서 현실에 다시 눈을 돌릴 수밖에 만든 것은 정말 절묘하게 이야기가 짜였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 같네요. 그렇게 미자는 슬프지만 다시 현실로 돌아와 자신에게 주어진 업보를 짊어지게 됩니다.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과 관련해서 타인의 일인 줄 알았던 것이 자신이 해결해야 할 문제로 바뀌게 되고, 다시 그것을 동시에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됐는지, 죽은 여학생은 누구였는지에 대한 관찰자의 시점으로도 영화가 동시에 진행이 되어 다채로운 느낌을 자아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사건을 대충 수습하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가해자 학부모들과 일부 선생의 모습까지 적나라한 장면들을 보여주며 가슴 아픔과 혐오스러움을 전달합니다.
시가 쓰기 어려워요 라는 대사가 다른 시 강좌 학생들과는 달리 미자에게는 저에게 주어진 시련을 똑바로 마주하기 어렵다는 식으로 들립니다. 자신이 다가가야 할 시상은 보통사람이 다루기에는 분명 어렵고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죠. 정말 그녀가 시를 쓰기 어려워했다면 그녀가 보여주는 시적인 발전이 등장하지 않았을 겁니다. 피해자의 어머니에게 가서 합의금 상담을 하러 갔지만 떨어진 살구를 보고서는 단번에 시상을 떠올린 그녀의 모습이 바로 그 예지요. 그녀가 가진 질병 때문에 미처 합의금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지만 그녀가 이후에 매우 불편해하는 것은 비단 그녀의 몸상태가 나빠졌다는 것에 대한 자책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영화는 가해자의 입장에서 피해자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를 시상의 접근을 이용해 올바른 방법을 제시합니다. 또한 우리가 시상에 다가가지 못함으로써 시가 죽듯이, 우리 사회도 타인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 못함으로써 시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지요.
그 외에
정적인 느낌의 영화지만 감상을 하고 나면 영화 자체로 시처럼 빈 공간이 빈공간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영화의 역동적이지 않은 장면들에서 우리는 수많은 감정과 생각이 채워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미자가 치매를 앓고 있다는 설정도 개인적으로 좋았습니다. 시라는 것이 직접적으로 단어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사물을 다르게 표현하기 위해서 풀어내 돌려 표현하는 경우도 있는데, 마치 미자의 상황이 그런 과정을 그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들게 했거든요. 어쩌면 정말 영화 속 대사처럼 미자는 시인이 될 운명을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 속 미장센이 정말 뛰어난 영화로 허투루 집어넣은 장면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네요. 장면 하나하나가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어서 곱씹을수록 더욱 깊은 맛이 나는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배우 윤정희의 연기가 참으로 보기 좋았습니다. 소녀소녀 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데, 그녀의 주위에 일어나는 상황들이 마치 나비의 허리에 새파란 초승달이 시리다는 시의 구절이 떠오르게 만드네요. 감수성 넘치는 미자가 현실을 마주하게 되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을 배우 윤정희가 잘 표현한 것 같습니다. 시라는 것이 영화처럼 대상에 대해 잘 알아야 그만큼 다채로운 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잘 알고 있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고민도 있어야 하겠네요. 다가가야 알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듯 시낭송회에서 음담패설과 음주로 날라리 같이 보였던 ‘박상태(김종구 분)’이 실제로는 좋은 형사였다는 점도 재미있는 설정이었습니다. 마지막 엔딩이 참으로 여운이 남는데 미자의 선택이 무엇이었을지는 두고두고 이야기할만한 거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미지 출처: 공식 예고편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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