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터: 제시카 가오
출연: 타티아나 마슬라니, 진저 곤자가, 스티븐 콜터, 팀 로스, 베네딕트 웡, 자밀라 자밀, 마크 러팔로, 찰리 콕스, 케빈 파이기 외
장르: 코미디, 법정, 모험, 액션
볼 수 있는 곳: 디즈니 플러스
안녕하세요.
드디어 ‘변호사 쉬헐크’ 9화로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했습니다. 배우 마크 러팔로가 맡은 헐크는 저작권이 복잡하게 얽혀있어서 단독 영화가 나오기 어려웠습니다만, 쉬헐크는 단독 영화가 아니더라도 드라마로서 단독 작품이 마무리가 되어 나오네요. 공개 전부터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 드라마였습니다. 일단 쉬헐크의 비주얼에서 익숙한 누군가의 모습을 느끼시는 분들이 많았는데 그래도 푸근하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쉬헐크가 얻어가서 좋은 시작을 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되네요. 변호사 쉬헐크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그대로 살려 끝까지 제대로 완주를 했을까요.
시트콤? 슈퍼 히어로 장르치고는 신선해
헐크라고 하면 적지 않은 사람들의 예상은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동반한 거대한 액션을 떠올릴 것이라 믿습니다. ‘브루스 배너(마크 러팔로 분)’가 그동안 마블 영화에서 보여줬던 모습만 해도 괴력의 분노조절장애 히어로였으니까요. 인피니티 사가 뒷부분으로 갈수록 헐크도 진화된 모습을 보여줘야 했기에 야성적인 면이 많이 사그라들고 새로운 측면으로 접근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헐크하면 부순다 라는 캐치프라이즈가 모든 팬들의 머릿속에 각인이 되어 있습니다. 변호사 쉬헐크는 영리하게도 헐크의 절차를 그대로 밟지 않았습니다. 이미 이중인격에 대한 고뇌는 헐크가 전부 했기 때문에 똑같은 내용을 쉬헐크에도 담으면 다소 비슷한 내용을 겪게 되어 피곤해지기 마련이라 재미가 없을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조금은 산뜻한 시트콤의 형식을 따서 변호사 쉬헐크가 만들어졌습니다.
마블 작품들은 결국은 슈퍼 히어로 장르를 다루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도 그것을 자신의 큰 약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네요. 마블이 가지고 있는 슈퍼 히어로 수만 해도 엄청나게 많은데 이들이 가진 공통된 요소들을 그대로 풀어나가면 결국은 능력만 다른, 거기서 거기인 슈퍼 히어로 영화가 되어버리게 되거든요. 그래서 슈퍼 히어로 장르에 다른 장르를 섞어서 만드는 시도를 마블이 하게 됩니다. 가장 잘된 예시가 2014년작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저’가 아닐까 싶네요. 냉전시대 첩보물의 속성을 슈퍼 히어로 장르에 잘 녹여내어 엄청난 작품을 만들었지 않습니까. 그리고 드라마로 치면은 ‘완다비전’도 있는데 이쪽도 시트콤의 형태를 지닌 드라마였습니다. 다른 점이라면 변호사 쉬헐크는 정말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버전이라고 해야 할 것 같네요.
첫인상은 신선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가벼운 농담들이 인물들 사이에서 난무하는 가운데 그동안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들을 얼렁뚱땅하게 설명하고 넘어가는 장면들이 나름대로 영리하게 보이기도 했고요. 예고편에서 헐크는 어떻게 팔이 다 나았는가, 혹은 ‘어보미네이션(팀 로스 분)’은 ‘웡(베네딕트 웡 분)’과 어떻게 격투장에서 싸우는 관계인가 싶은 것들이 구렁이 담넘어가듯이 묘사됐습니다. 브루스 배너의 헐크를 다룰 때는 멜랑콜릭 했지만 ‘제니퍼 월터스(타티아나 마슬라니 분)’의 쉬헐크는 재미있게 자아의 혼란을 표현한 것도 꽤나 괜찮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나는 제니퍼인가 아니면 쉬헐크인가에서 확장된, 사회적으로 나는 제니퍼로 알려져 있는가 아니면 쉬헐크로 알려져 있는가에 대한 점을 다루고 있다는 점도 이 드라마가 가지는 장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거기에 4차원의 벽을 뚫는 속성까지 지니고 있어서 종종 관객에게 말을 거는 제니퍼의 모습이 재미있게 나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드는 괴리감
시트콤의 포맷을 지니고 있어서 그런지 굉장히 가벼운 느낌으로 만들어져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다른 속성들도 잡아먹고 있는 듯한 느낌이 나는 것은 글쓴이만의 착각일까요. 법정물의 속성을 지니고 있지만 장르에 떡 하고 법정물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 속 법정은 단지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 되어있지, 제니퍼가 활약하게 되는 주요 전장이 아닙니다. 제니퍼를 잘 표현해주는 장소도 아니고요. 오히려 제니퍼를 잘 표현해주는 속성은 법정 밖에서 존재합니다. 별 볼 일 없는 외모의 제니퍼와 핫한 느낌이 충만한 쉬헐크 사이에서 주인공이 느끼는 혼란은 법정에서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법정에서 일어난 일보다 법정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더 흥미롭네요. 어보미네이션의 재판 자체는 재미없고 이 인물의 진의가 무엇인지에 호기심이 갈 뿐입니다.
어보미네이션과 같이 오랜만에 등장한 인물들에게서 이상한 느낌이 듭니다. 그렇게 브루스 배너를 안 잡아먹어 안달이 난 어보미네이션이 갑자기 순한 양처럼 나온 것이 글쓴이에겐 매우 어색하게 다가왔습니다. 오랜 시간을 갇혀있다 보면 사람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 싶은데 시트콤적인 장르에 녹여들다보니 캐릭터성을 좀 너무 망가뜨리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이는 오래간만에 출연한 ‘데어데블(찰리 콕스 분)’에게도 통용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넷플릭스에서 그토록 처절하게 킹핀과 싸웠던 그가 그렇게 가벼운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글쓴이의 머릿속 데어데블의 이미지와 매칭이 되지 않더군요. 데어데블이 항상 우울한 이미지를 보여줘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멧 머독도 사람인지라 가끔은 농담 따먹기를 해야 하죠. 그러나 킹핀이 어딘가에 돌아다니는데 여자랑 히히덕거리며 하룻밤을 보내는 그의 모습이 적응이 되지 않습니다.
시트콤이라서 그런가요?
그런데 이 드라마가 감상할수록 점점 슈퍼 히어로 장르가 맞는지 헷갈리게 됩니다. 시트콤 장를 슈퍼 히어로물에 끼얹은 것은 괜찮았습니다만, 이 드라마의 메인 줄거리가 무엇인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놀랍게 이 이 드라마 속 제니퍼의 문제가 제대로 터지는 지점이 8화 마지막이라는 점입니다. 그전까지는 정말 일상물처럼 돌아가는 시트콤을 보는 듯한 착각을 보여줍니다. 슈퍼 히어로의 느낌이 많이 퇴색되어 있어서 슈퍼 히어로 느낌이 전혀 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그 흔한 빌런도 누구인지 제대로 특정이 되지 않습니다. 제니퍼에 적대하는 세력이 등장합니다만 그다지 매력 있지 않은데, 이들에 대한 표현이 현실의 특정 마블 팬들을 겨냥하는 듯한 뉘앙스를 보여 오히려 반발을 사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속성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쉬헐크가 등장함에도 액션이 별 볼 일 없는 수준입니다. 헐크만큼 대단하다는 것을 1화에서 어필하지만 그 이후에서의 장면들은 많이 약하다는 느낌만 들뿐입니다. 어차피 시트콤이라 액션에 그리 큰 비중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제작진들은 생각했었나 봅니다만 액션의 수준이 너무 처참해서 슈퍼 히어로에 중점을 두고 보는 팬들은 실망을 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시트콤의 형식을 취해도 쉬헐크의 아이덴티티는 결국은 슈퍼 히어로가 아닌가요. ‘타이타니아(자밀라 자밀 분)’과의 티격태격하는 장면이 재미있고 유쾌하게 그려지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슈퍼 히어로서의 장면이 별로 등장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단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나 이제 뭔가 벌어지나 싶은 마지막 9화에서의 이야기 전개는 마치 제작진로부터 핵폭탄을 정통으로 맞는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액션과 장르를 떠나서 이건… 이게 맞는 건가요 싶네요.
그 외에
4차원의 벽을 위에 잠깐 언급했는데, 4차원의 벽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 마지막 9화로 가장 황당하게 만드는 부분입니다. ‘K.E.V.I.N(케빈 파이기 분)’과 제니퍼의 만담은 처음에는 신선했지만 결국에는 아무것도 제대로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괜한 장면을 연출한 게 아닌가 싶네요. 거기에 돈과 예산을 운운하는 것을 보면 이 드라마가 마치 관객들에게 어쩌라고 난 최선을 다했어라고 말을 건네는 것 같아요. 쉬헐크의 그래픽이 좋은 편이 아니었거든요. CG가 남발된 영화판에서는 불쾌한 골짜기가 크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만 실제 인물들이나 실제 소품들과 부대끼며 있어야 하는 쉬헐크는 불쾌한 골짜기가 노골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여하튼 4차원의 벽을 제대로 잘 활용하지 못한다고 보네요. 같은 마블 캐릭터인 ‘데드풀’과 비교하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겁니다.
배우분들의 연기를 볼만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제니퍼 월터스 역을 맡은 배우 타티아나 마슬라니의 연기는 드라마에서 최고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고편에서 제니퍼의 속성이 무엇인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는데 드라마를 감상하면서 이 인물의 속성이 배우의 연기를 통해 잘 전달됐다고 생각됩니다. 브루스 배너와는 다른 인물의 양면성을 잘 표현했어요. 드라마가 전체적으로 꽤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중에 친숙한 인물들도 등장하거나 아직 등장하지 않은 히어로와 연관된 인물들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법정물이나 슈퍼 히어로물로 이 드라마를 즐기기에는 많은 부분에서 부족함이 드러나지만 시트콤으로 보기에는 괜찮은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의 엔딩이 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네요. 관객의 니즈에 맞추기보다는 제작진이 우리의 방식을 따라오라는 식의 뉘앙스가 조금 걱정됩니다. 결국 제니퍼 월터스의 4차원의 능력도 마블의 각본에 불과한 것이라는 단점도 함께 노출되는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미지 출처: 공식 예고편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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