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장률
출연: 박소담, 윤제문, 권해효, 야마모토 유키, 오세현 외
장르: 드라마
볼 수 있는 곳: 왓챠, 넷플릭스, 티빙, 웨이브
안녕하세요.
이 영화가 제작 발표를 했을 때의 사람들의 반응이 떠오릅니다. 감독은 중국 사람, 배우는 한국 사람, 촬영지는 일본. 정말 기묘하구나 싶었습니다. 장률 감독의 작품을 이번에 처음 접했습니다. 참 좋은 분이신 것 같네요. 상업 영화와 거리가 먼 영화를 만드시는 분 같은데 그래도 글쓴이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분들이 팬으로 자처하고 계셔서 더 놀라기도 했습니다. 이 기묘한 조합의 영화는 대체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요.
말 그대로 기묘한
좀처럼 볼 수 없는 요소들의 조합으로 탄생한 영화인만큼 담겨 있는 이야기도 제법 기묘했습니다. 시작부터 잠을 자고 있는 ‘제문(윤제문 분)’에게 교복 입은 ‘소담(박소담 분)’이 뜬금없이 후쿠오카로 여행을 가자는 황당한 제안을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황당함에 어안이 벙벙한 제문이 뭔가에 홀리듯이 소담의 제안에 수락을 하는데 신기하게도 헌책방을 나서는 순간부터 일본 후쿠오카로 배경이 순식간에 바뀝니다. 기묘한 여행의 시작은 이제부터입니다. 소담의 행동이 참으로 신비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한국말밖에 못 하면서 일본 사람들과 문제없이 소통을 할 수 있고 제문과 ‘해효(권해효 분)’의 곁을 어느 순간 떠나 사라졌음에도 문제없이 다시 남자들의 곁으로 찾아 돌아옵니다.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녀의 존재감이 영화 속을 가득 메워 마치 귀신에 홀린 듯한 기분이 들게 합니다.
제문과 해효의 만남도, 소담만큼 아니지만 기이합니다. 대학교 선후배였던 그들이 후쿠오카에서 만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처럼 보이는데 이들이 이렇게 멀리 떨어져 살게 된 이유가 이 영화의 실마리로 작용하는 듯합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소담이 두 남자가 사랑했던 여성이 투영된 무언가라는 점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정체를 쉽사리 드러내지 않습니다. 기이한 이야기는 소담뿐만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도 드러나게 됩니다. 해효가 얼마 전에 분명히 만났다는 일본의 유명 헌책방의 할아버지 주인장이 2년 전에 죽었다고 하거나, 소담이 아무렇게나 일본의 가게에 들러 그녀가 가지고 있었던 일본 인형을 맡기는 장면들은 현실의 상식을 초월한 무언가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등장인물들도 관객들이 감상하는 기이한 부분에 공감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이것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어필을 하기도 하고요.
두 남자 사이의 흥미로운 이야기 그리고 감정 그리고 꿈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가 그래도 흥미롭게 보이는 건 제문과 해효, 두 남자 사이의 관계 때문입니다. 대학생 때 사랑했던 한 여자가 삼자대면 이후 퇴학하고 연기처럼 사라지게 되면서 두 남자의 마음에 깊이 자리 잡은 상처가 제법 컸음을 보여줍니다. 28년의 세월, 별 볼 일 없는 삶을 살고 있는 두 남자의 무기력한 모습에서 이미 상처는 마음앓이의 수준을 아득히 넘어섰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끼어서 다시 삼각관계를 재현해 보려는 소담은 이야기의 완성도를 높입니다. 마치 후쿠오카에 여행을 하자는 이유를 이미 다 알고 있는 소담은 두 남자의 사이에서 그들의 아픈 상처를 끊임없이 건드립니다. 아픈 과거에 몸부림치며 서로 눈앞에서 사라지라고 하는 두 남자는 자신들의 처지를 돌아보며 고통을 서서히 치유합니다. 다시 관계를 서서히 치유하면서요.
하지만 28년이라는 아픔의 무게는 쉽사리 해결되지 않는 법입니다. 영화가 기묘하다는 느낌을 러닝타임 내내 뿜어내는 이유는 이 모든 것이 꿈이었다는 것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영화의 엔딩을 보면서 혼란스러울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글쓴이 또한 혼란스럽게 맞이하는 엔딩에서 황당함을 느꼈지만 이내 이 영화가 지금까지 보여줬던 것은 지독한 악몽 같은 후회라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현실의 해효가 꿈의 제문이 되어 대학생 때 사랑했던 여자의 고향에 살고 있는 자신을 찾아가 해묵은 감정을 풀어내는 여행을 그린 것이었습니다. 28년의 긴 세월 꿈에서라도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풀어내어 엔딩 직전에 보여주는 해효와 제문의 넉넉한 표정과 달리, 엔딩에서 보여주는 해효의 표정은 아직도 고통에 허우적대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어쩌면 이 꿈은 이번이 처음이 아닐 수도 있겠네요.
다소 황당한 결말이 아닐까 싶지만 영화가 기묘한 세 인물의 여행을 통해서 이것이 현실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사이키델릭 한 느낌이 지배적인 이 영화가 그렇다고 개연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 가지 요소들을 통해서 이 이야기가 진짜는 이것이라는 것을 꽤나 암시하기는 합니다. 그것이 너무도 막연하게 표현이 되어 있기에 의미하는 바를 캐치할 수 있어도 명백하게 해석하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어느 분들께는 꽤 지치게 하는 영화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뜬구름 잡는 느낌의 이야기가 하나씩 하나씩 곱씹어서 되돌이켜보면 꽤 단맛을 느낄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네요. 막상 흘러가는 장면들을 보면 대체 왜 이렇게 되는 것일까 싶은 호기심이, 당장의 영화 장면에 해석을 바로 이뤄내지 못해도, 후에 강렬히 남은 여운을 리와인드하게 만듭니다. 마치 꿈에서 깨어난 해효처럼 말이죠.
그 외에
배우 박소담의 기묘한 매력이 잘 드러나는 영화였습니다. 상상 속이지만 기억의 형태를 그대로 지닌 여인. 하지만 자기 자신도 자신의 정체에 대해서 잘 모르는 그녀가 보여주는 기이한 힘은 영화의 정체성 그대로를 뜻한다고 생각합니다. 배우 윤제문과 배우 권해효의 티키타카가 되는 연기도 정말 인상 깊게 봤습니다. 세분이 다시 함께 이런 영화를 찍을 날이 앞으로 얼마나 있을까요? 짧은 러닝타임의 영화이지만 굉장한 몰입감으로 인해 거진 단편영화 수준으로 느껴질 정도의 체감을 했습니다. 영화가 사랑했지만 떠나간 여인에 대한 그리움을 시각적으로 너무 잘 표현했기에 관객들의 애틋한 기억들을 끄집어내지 않을까 싶네요. 하지만 상술한 대로 이 영화는 상업 영화와는 거리가 먼 영화로 대다수의 분들에게는 취향저격인 영화가 아니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리 어려운 영화는 아니라는 점도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참 아련한 영화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미지 출처: 공식 예고편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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